심리상담학 칼럼

우울에서 벗어나는 표현법

상담을 공부하는 바다 2022. 10. 10. 01:18

from unsplash.com

 

 
징징거리는 것 같아서 제 얘기는 잘 안하게 돼요.
말한다고 제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래서 마음에 담고 사는 것 같아요.
감정을 표현하는 게 의미가 있나요?

 

상담실에서 가끔 이런 질문을 듣습니다. 특히 우울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많은 분들이 자기 감정을 충분히 표현하며 살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그러니 상담실에서 어떤 주제로 얘기를 나누기 시작하더라도 본격적인 이야기는 이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그때 어떻게 느끼셨어요?”

“그 얘기를 하고 있는 지금 어떻게 느끼세요?”

 

감정은 증발하지 않고 쌓입니다.

감정을 표현하는 것 그 자체로 심리적 치료가 일어납니다. 힘든 감정이 느껴질때 충분히 표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표현되지 않은 감정은 어디 가지 않고 마음 속에 쌓입니다. 물론 우리는 마음에 쌓이는 과정을 잘 느끼지 못하고 삽니다. 그렇게 자꾸자꾸 쌓이면 언젠가 울컥하고 수면 위로 올라오기도 합니다. 그렇게 불편한 감정이 불쑥 느껴지면 대개 사람들은 회피하려고 합니다. 유튜브, 넷플릭스 등 미디어를 보거나 사람들과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누면서 잊어버리죠.

 

표현하지 않으면 벌어지는 일

그러나 이것은 심리적으로 건강하지 않습니다. 마음의 병이 생기는 큰 이유 중 하나는 감정 억압입니다. 소통전문가 김창옥 교수님께서는 “감정과 내가 하나가 될 때 문제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감정과 내가 하나가 되지 않으려면 감정과 거리를 두고 그것이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해요. 그 방법이 ‘표현’입니다. 중요한 감정이 표현되지 못하고 계속 마음 속에 꾹꾹 눌리기만 한다면 어느 순간 감정이 주체할 수 없이 터져나오고 통제할 수 없는 행동들이 나타납니다. 갑자기 폭발적으로 화를 내거나 무언가 때려 부시는 나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자기파괴적인 사람들은 자해를 하거나 신체적으로 병이 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우리 감정을 너무나 억압해왔다는 반증입니다.

 

묵은 감정을 꺼내는 법

상담실에서는 억압된 감정을 말과 그림을 통해 밖으로 꺼내려고 노력합니다. 스스로 ‘그 감정’을 말로 아주 구체적으로 표현해보고 혹은 그림으로 그려보는 것이지요. 그럼 내 귀가 내가 하는 말을 듣고 내 눈이 내가 그린 그림을 봅니다. 상담사도 여러 대화의 방법을 통해 내담자의 말을 반영하고 거울처럼 돌려주려고 노력합니다. 내담자가 스스로 어떤 것을 느끼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게요. 그럼 나도 모르게 '내가 이런 마음이었구나'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감정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의 예시를 들어보겠습니다.

 

“그 사람을 보면 뭔가 짜증이 나요.” (모호한 감정)

→ “회의할때마다 그 사람이 눈을 치켜 뜨는 것이 마치 저를 평가하려고 하는 것 같이 느껴져서 어이가 없었어요. 자기가 마치 상사라도 되는 듯이 굴어요. 사실 그럴 때 저는 약간 긴장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말하다보니 그거에 긴장하는 나 자신에게도 화가나네요.” (감정의 구체화)

 

우리는 나의 감정을 구체적이고 명료하게 말로 표현하는 과정을 통해 예상치못한 어린시절의 나와 만나기도 하고, 혹은 외면해왔던 자기이미지를 확인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어떠한 상황에서 무엇을 느꼈고, 그 감정이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를 알게됩니다. ‘짜증’이라는 모호한 감정과 깊게 만나면서 심연에 깔려있던 우리의 감정이 의식세계로 올라오고 (무의식의 의식화) 나는 나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왜 그런 것을 느꼈고, 왜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었는지를요. (자기이해)

 

정리하자면,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내가 나를 이해하기 위한 첫걸음입니다. 억압하지 않고 용감하게 그 감정과 정면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는 막연한 우울, 불안, 자기비난에 갇히지 않을 수 있어요. 또한 통제할 수 없는 감정에 지배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일상에서 우울에 맞서는 방법

표현은 그것 자체로 치료적인 효과가 있습니다. 일상 속에서도 우울, 불안 같은 감정들이 느껴진다면 그것을 없애려고 하지 말고 그 감정에 머물러서 그것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보세요. 아래와 같은 방법을 습관화하면 참 좋습니다.

 

(1) 믿을만한 대상(친구, 가족, 이성친구, 배우자 등)에게 그때 어떤 상황이었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아주 상세하게 말해보세요.

(2) 말하기가 어렵다면 그 감정에 대해 그림을 그려도 좋고,

(3) 어떤 감정을 느꼈는 지에 대해 일기를 쓰셔도 좋습니다.

(4) 그 그림과 일기를 다른 사람이 그리고 썼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어때 보이는지 한번 가만히 음미해보세요.

 

일기를 쓰실 때는 나의 생각보다 감정을 쓰려고 노력해보세요. '나는 ~한 생각이 들었다'보다 '나는 마치 ~한 기분을 느꼈다'고 쓰는게 더 좋습니다. 건강한 대화, 글쓰기, 예술로의 승화 등의 여러 방법을 통해 감정을 밖으로 내보내고 그것을 스스로 바라보는 경험을 일상 속에서 많이 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모두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온전히 내 삶을 살아가실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